즐겁게 걷자!

걸어야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

우리가 걷는 길은 모두 꽃길이지요.

걷기 이야기

100Km 걷기 대회

가능혀 2022. 12. 14. 07:32

남한강변 쉼터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흔히 하는 말 중에병원 치료를 하다가 안 되면 약물치료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마지막엔 걷기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이동 수단의 편리함과 바쁜 일상으로 걷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인병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자 일부러 둘레길, 올레길, 산티아고 등 해외 원정길까지, 이런저런 길들에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것 또한 건강한 삶에 대한 한 축이 되어가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무박 2일의 100Km 걷기에 도전하는 정신적 두려움과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지만, 과감하게 걸어보기로 한다. ‘걸을 수 있을 때 자신의 체력을 살펴보는 것 또한 보람 있는 일이지 싶다 초여름 날 100Km 걷기 도전에 나선 저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걸음을 옮겨 보실까요?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연초록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싱그러움이 더해가는 5월의 첫 주말 오후다. 원주 명륜동 젊음의 광장에서는두 다리가 의사이다.”란 표어와 함께2회 한국 100Km, 걷기대회 무박 2일의 걷기 행사가 열렸다. 참가비는 30,000원이다. 기온 26~27도로 덥다. 바람은 살랑거리고, 모자를 썼지만, 햇살이 콧등을 간질인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장거리 걷기에 대한 주의 사항과 안내를 전달하고 출발을 알린다. 전국 36개 시, 도에서 참가한 130여 철각들과 외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1, 1보 걸음을 옮긴다. 될 수 있으면 아니, 일부로라도 혼자 걷는 것보다는 어우렁더우렁 함께 걷는 것이 훨씬 더 좋다. 행사장을 뒤로한 철각 들 중에는 걷기의 달인들로 불리는 일본인들은 단체로 참가를 했다. 그중에서도 나비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걷는 일본인 할머니 -체구도 여리고 작은데 건강상 이유로 장기의 절반을 수술로 들어냈다고 했다- 가 있는가 하면, 독일, 네덜란드, 미국, 호주, 그리고 물 건너 제주도에서도 왔다. 가히 세계적인 걷기 행사다. 외국인들과의 소통은 어색하지만 바디-랭귀지를 통해 서로를 응원하며,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따라 이런저런 이름의 고개를 넘어 귀래로 향한다. 선두는 이미 보이지 않지만, 마라톤 경기처럼 10Km, , 후 까지는 대체로 그룹을 지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다. 아지랑이같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갖가지 방법으로 피해 가며, 특히 오르막길에선 우르르 모였다가 내리막길에서는 낱낱이 흩어지는 모습을 빈번하게 연출한다. 이렇게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평소에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산천을 두루두루 살펴 가며 걷기에 대한 궁금증을 서로 물어보기도 한다. 간혹 혼자일 때에는 자신과의 대화는 자문자답을 가슴으로 나눈다. ‘어떻게 걸으면 완보를 할 수 있을까? 순위는 의미가 없다지만, 몇 명안에 들 수 있을까?’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자신의 체력에 맞게 선두를 뒤따라간다. 띄엄띄엄 있는 주택가를 지나면서는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가지런히 쌓아 둔 장작더미 등이 정겹게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정원의 꽃을 보노라면 풀벌레 합창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장작더미를 보면 한겨울에 눈 내리는 굴뚝 생각이 났다. 따뜻한 아랫목에 고구마와 밤을 굽는 화로까지, 그러한 삶의 터전들을 들여다보며 그런 상상을 해보는 재미도 솔솔 하다. 집주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는 인천에서 온 중 1남 학생이 최연소,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원주의 77세 어르신이 최고령 참가자로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며 함께 걷는다.

 

  20Km 귀래, -귀한 분이 오셨다고 해서귀래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주최 측이 제공하는 저녁을 먹는다. 식판에 담아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아예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밥을 먹는다. 양치질을 끝내고 서둘러 출발을 하는데 이내 땅거미가 몰려들 시간이다. 여기서수신호봉경광등을 받아들고, 어둠 속으로 이어져가는 희미한 경광등 행렬을 바라보니 반딧불이가 날고, 도깨비불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연상을 해본다. 오르막길에서 앞서 출발한 사람들을 추월하고자 보폭을 줄이며 속보를 하는 순간, 아뿔싸! 내리막길을 걷는데 무릎이 뒤틀리며 불편함이 느껴진다. 평지와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에 더 힘이 들어간다. 일주일 전, 체력점검 & 훈련 차 원주->제천 의림지 33Km, -왕복 약 12시간 소요,- 독보걷기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평소 주말에는 30Km는 종종 걸었고, 때로는 동호인들과 원주시청에서, 충주시청, 제천시청은 당일에, -강릉시청과 서울시청- 등은 이틀간 이어 걷기를 해왔었지만, 독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부러 선택한 치악재와 제천 피재는 경사가 급하다 보니 내리막을 걸을 땐 지그재그로 걷고 자주 쉬어줬어야 했었는데, 무모한 걸음으로 걷다 보니 누적된 압력에 탈이 났던 것, 때문에, 개울만 만나면 손수건에 물을 적셔 열을 식혀주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제 겨우 몸이 풀리는가 했는데 말이다. ‘이러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최악의 사태까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던, 작든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 왔었기에, 내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었는데 말이다. ‘아니야, 아니야를 외쳐 보지만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때마침 옆을 지나던 참가자 중에 골프 국가대표선수가 올해의 목표라는 고 2 여학생과 나란히 걸으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학생은 이성 문제로 골프도, 학업성적도 오르지 않아 슬럼프를 겪고 있다고 했다. 슬럼프를 극복하려고 스스로 이 걷기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고, 걷고 있는 지금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노라고 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얘기를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학생 나이 때쯤에세계를 내 품 안에를 다짐하며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1, 나는 누구인가? 2, 무엇을 할 것인가? 3, 어떻게 할 것인가? 4, 왜 해야 하는가? 이 네 가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안에 답이 다 있을 것이라며, 위로와 격려가 될지는 그 학생이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 도전을 위해서는지피지기란 말처럼, 먼저 나를 알고, 때로는 남과 다른 전략과 전술도 필요하다는 조언을 건넸다. 남들과 같이해서는 결코 남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이런 조언은 특정 분야에 전문가나 뛰어난 코치라 하더라도 본인의 외적인 사안에 대해서까지 모두를 다 커버해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런 내용은 교과서에도 없고, 선생님도 얘기해줄 수도, 어디서 들을 수도 없을 것이라며, 간단한 예를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 앞서가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잠깐 한눈을 팔게 되면, -화장실 이용과 물 섭취- ,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몇백 미터는 뒤 쳐지기 일쑤다. 따라서 다시 따라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라는 말로 이해를 돕는다. 이런저런 삶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앞으로의 자세, 그리고 이성과의 문제는 지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지지만, 학습과 국가대표의 목표는 지금의 때를 놓치면 영영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말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니, 조금 전에 말씀하신교과서에도 없는 좋은 내용의 말씀을 들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내 말을 이해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이해의 몫은 그 학생의 몫이므로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주면서 앞서 걷다 보니, 그 몇 토막의 대화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의 통증도 사라지게 하는 진통제와 같은 대화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체크포인트 쉼터,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하는 어묵 국물과 함께 쉼을 하고 계신 77세 최홍기 어르신과 만나게 되었는데, 공식 대회 2회째라 하신다. 비공식 -코스답사- 1회 등, 벌써 3번째 100Km, 도전이라시며, 신장 160cm 가 안 되시는 작은 체구에 보폭은 짧고 종종걸음으로 날다람쥐처럼 걷는 자세로, 앞에 얘기한일본인 할머니와 비슷한 이미지로 걸으신다. 그동안 걸은 거리만도 총 3,000Km에 육박하고 있다며, 짧게나마 걷기 예찬과 함께 당신이 경험하신 삶의 지혜를 들려주신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시듯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좌절도 있겠지만, 웃으면서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며, 나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고 내 종아리처럼 삶의 근육도 든든하게 길러 줘야 한다.  말씀을 하시며, 당신의 단단한 나무토막 같은 종아리를 보여주신다. 아울러 허리가 구부러져 걸으면나 죽으러 가요!” 하는 것이라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과감하게 도전을 해보고,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조언을 하신다. 조금 전에 내가 그 여학생에게 했던 내리사랑처럼 말이다. 그렇게 잠깐 몇 말씀 하시고는 다시 앞서 나가신다. ‘오늘은 기록 단축이 목표이신가?’ 어르신의 경광등은 어느새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제 자정도 가까워지고 앞과 뒤의 거리도 제법 멀게 느껴진다. 간간이 오가던 차량도 없으니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이제 다시 이마의 랜턴 불빛 하나를 벗하며 오로지 나만의 시간과 고독을 즐긴다. 함께 걷고자 한다면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거나,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두리번거리던 고개를 들자 랜턴 불빛이 하늘로 향한다. 별들은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은하수도 보이기에 대화를 청하며 푸른 하늘 은하수 노래를 불러본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지금 어디쯤을 가고 있을까? 밝은 별일까? 저 별처럼 밝은 빛을 낼 수 있을까? 내 눈에 들기까지는 1광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거리는 또 얼마나 될까? 열기는 있을까? 빛은 열기가 없겠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까? 등등, 스스로 묻고 답 하지만, 별은 뭐라고 답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별들도 졸음에 젖어가나? 하긴 나도 이렇게 졸리는 이 시간에,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걷기를 하는나는 또 누구인가?’ 포기를 하면 차를 타고 이송되어 편안한 잠도 잘 수 있는데, 누가 강요하지도 않고, 뭐라 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밤은 낮과는 다르게 어둠이라는 것을 빼고는 두려울 게 없는데, 왜 밤을 무서워할까? 자세히 볼 수 없는 것 말고는 달라지는 게 없는데 말이다. 낮과 밤의 구분은 낮에 피곤해진 몸을 밤에는 쉬라는 뜻일 게고, 쉼은 또 다른 생산을 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는 생각에 다다르던 차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들과 합류하면서 은하철도 999가 스쳐 가기도 한다. 이어지는 마을 길을 지날 때는 군데군데 가로등 불빛이 그 마을의 이미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소나무, 대나무, 교회 십자가 등이 말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는 동안 반짝이는 경광등 불빛에 견공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목이 터지도록 짖어대니, 순간 미안하고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구간 행렬이 끝나는 시간까지 약 1~2시간 동안을 짖어야 하는데, 그리고 근처 야산의 산짐승들도 많이들 놀랐을 거다. 잠자리에 든 주민들도 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운가? 하며 잠을 설쳤을 것이고.

 

  자전거로 국토 종주할 때 이 다리를 한번 건넜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론면 49번 지방도 왕복 2차선 길이 480m의 남한강 다리를 바라본다. 이곳에서 간식으로 컵라면과 커피 한잔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두 손을 들고 벌을 받는 아이처럼 무릎을 꿇고 한 5분쯤 앉았다가 다리를 펴고 주무르기를 반복한다. 근육 회복 스트레칭이다. 이렇게 하면 계속 쓰던 근육들을 이완시켜주며 걷기가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뒷사람들의 쉼을 위해 은박 매트 자리를 양보하며 걸음을 또 재촉한다. 이제 딱 절반을 걸었다. 이제부터는 통증도 거의 무감각 상태의 무아경無我境으로 빠져든다. 비포장 남한강 둑 방 길을 지나면서는 태백 황지 연못에서부터 시작된 남한강의 짙은 물안개와 내 몸에서 나는 끈적끈적한 땀은 마치 밤꽃 향기를 터트리던 에로틱한? 감정마저 불러일으킨다. ~! 이래서 어두운 밤은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다 들게 하다니, 하고 있는데, 저 아래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은 경광등 행렬에 어리둥절하며, 낚싯대를 비추던 불빛을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군사훈련 행렬로 착각하고 응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방길은 이슬과 달빛에 젖은 채 함박웃음으로 걸음을 격려해주는 철쭉과, 배시시 미소 짓는 달맞이꽃이 참 인상적이다. 불빛 행렬에 놀란 나방들도 잠을 설치며 인정사정없이 난잡하게 이마의 렌턴 앞으로 날아든다. 거기에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더해지고, 흥원창興元倉, 이곳에는 서산대사의 시비詩碑가 있는데 렌턴으로 비춰보는 내용은 이렇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 위를 걸을 때는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지금 내 등에 걸려 있는 경광등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나침판이 되어주는 격으로 아주 딱 맞아떨어지는 시 인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이곳은 강원도 남서부 지역을 흐르는 한강의 제1지류로서 횡성 태기산 자락에서 발원한 계천이 횡성군 공근면 부근에서 금계천과 만나 섬강 이란 이름으로 횡성읍과 원주시를 지나 여주시 강천면 건너편인 이곳에서 남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가 되는 곳이다. 청춘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듯 남한강 섬강이 서로 밀고 밀리며 뒤섞이는 자리다툼을 하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묵묵히 한강을 지나 서해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흘러가는 것처럼.

 

  경동대 근처 참 기름집 앞에서 컵라면으로 쉼을 하고, 영동고속도로 다리 밑을 지나 문막을 거쳐 동화 산업단지를 지날 때는 자신의 종전 기록 의림지 66Km를 경신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지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왜 돈 내고 사서 이 고생을 하나?’ 하며 포기하는 사람도 여럿 봤지만, 그 틈에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들은,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아까워서라도, 꼭 완보하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스스로가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들도 함께 걷는데, 고속도로엔 제법 많은 차들이 씽씽 지나가고 있다. 문막 휴게소 불빛도 내 무거운 눈꺼풀처럼 고개를 조아리는 듯이 보인다. 섬강을 거슬러 고개 넘고 내를 건너 간현 초등학교 근처에서 순두부국으로 제공되는 조식을 하면서, 한 참가자가 가져온 소주 한 병을 나눠마신다. 통성명하니차승원이 아닌 정승원이라고 했다. 키도 크고 어투도 좀 비슷한 느낌인데, 차승원은 터프한 이미지라면, 정승원씨는 좀 곱상한 이미지에 조금은 흐느적거리는 허당끼가 엿보인다고나 할까? 조금 전 내 생각과 비슷한 말을 한다.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노라고 뒤따라 들어온 사람들은 무슨 소린가? 하며 식탁에 놓인 술병에 관심을 보이자 술이 모자란다며 한 병을 더 시킨다. 술을 마신 탓인지 나는 오른쪽 발목이 부어오름을 느끼자 무의식적으로 파스를 붙였다. 아뿔싸! 열이 나는 상태에서는 냉찜질이 약인데 치명적인 처치를 하고 말았다. 더구나 아직 경험하지 못한 기록의 구간인데 말이다. 앞으로 남은 30Km 도착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다. 간간이 오는 졸음에 자세도 흐트러지고 술까지 마셨으니 거리가 고무줄처럼 더 늘어나는 음주 보행을 하게 된 것이다. 퉁퉁 부어오른 발목은 보폭을 대폭 줄였고, 그동안 추월했던 사람들에게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앞서 걷던 20대의 친구들은 발바닥에 물집이 터지고 엉거주춤 걷는 자세가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인데, 그나마 나는 부어오른 것 외에 외상은 없는 터라 부담은 좀 덜했다. 오히려 그들을 보며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면 바늘에 실을 꿰어 바느질하는 것처럼 물집에 실을 관통해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물이 실을 통해 빠져나가면서 말라붙게 되는 원리인데, 군대에서 장거리 행군할 때 하는 것처럼, -양말과 군화에 비누칠한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효과를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함께 걷는 그들은 외지에서 온 참가자들이고, 아직 여명이 밝아오는 것도 아니어서 어둡고 지리도 잘 알지 못한다기에, 본의 아니게 코스 안내자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선두는 벌써 2시간 전에 통과했단다.

 

  호저면사무소 앞이다. ‘어라?’ 앞서가던 인천 참가자가 한 걸음이 아쉬울 텐데 지나온 길을 되돌아온다? 이유를 물으니 막걸리를 찾아 주변 가게를 뒤졌는데 딱 한 병밖에 구하지 못했다며 한잔을 권한다. 물론 발목을 핑계로 사양한다. 이슬에 젖은 몸을 덥혀 줄 수는 있겠지만, 파스를 붙인 나는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대신 초코파이 2개와 물 한 병을 비우고 양말을 또 한 번 갈아 신는다. 에너지도 충전했으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원주천 둔치에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직진코스다. 원주천 둔치 길은 휴일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걷는 이들의 몰골이 아주 우스꽝스러우니 왜들 저러나 하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마지막 체크포인트 지점에서 거리 표시 현수막과 함께 모델이 되어주고, 6개의 체크포인트 확인 도장- 를 통과했으니 마감 시간 24:00 안에 드는 일만 남았다. 세 사람의 발바닥 부상자 중 두 사람은 점점 뒤로 멀어지고 경남 고성에서 온 군대 입대 예정이라는 한 청년만 나를 따라붙는다. 도로구간에 접어들어 교통신호를 기다리는 게 또한 고역이다. 페달을 쉼 없이 밟아줘야 일정 속도에 의해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나 마라톤처럼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전쟁터에서 상처 입은 패잔병들, 아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좀비들처럼 어두운 표정들로 남은 걸음을 1, 1보 옮기다 보니, 마침내 출발했던 골인 지점이 눈앞에 들어오고 행사장엔 응원 나온 축하객 -가족, 친지- 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장장 21.5 시간의 완보가 끝나는 순간이다.

 

  “귀하는 본 연맹이 주최한 제2회 한국 100Km 걷기대회에 참가하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완보하였음을 인정합니다.”하며, 완보 인증서와 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생애 첫 번째 100Km 걷기를 완보하는 순간이다. ‘명예의 전당 단상에 올라 완보 기념 촬영을 한다. 이후 대회 때마다 게시될 홍보용 촬영을 끝으로 귀가를 한 후 냉찜질을 하면서 샤워도 생략한 채 앉은 그대로 깊은 수면에 빠졌다. , 실신!

 

* 걷기 참고 사항 *

 

1, 신발은 자신이 걷기에 가장 편한 게 좋다

1, 양말은 발가락 양말로 조금 두꺼운 것이 좋다

(스포츠양말이나 발을 조이는 등산 양말은 지양하는 게 좋다혈액 순환을 방해함

1, 간편한 차림이 좋다무거운 짐은 지양최소한의 간식과 물만 지참.

1, 식사를 7~80 %  한다과식은 금물특히 술은 독약이   있음No!

1, 자신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

1, 꾸준한 훈련과 자신과 맞는 거리 선택

1, 모자양말 여분 글라스 크림 

 

 

* 참고 사항은 필자 경험을 나열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 2023년, 올해는 참가비 50,000원, 장소 : 밀양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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